전 시 명 : Heterotopia: 박예나기 간 : 2024년 8월 20일 부터 9월 3일 까지 / 일요일, 월요일 휴관운영시간 : 오후 1:00 부터 오후 7:00 까지장 소 : 잔느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직대로 298-1)주 관 : 잔느지 원 :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사용되고 버려지는 다양한 인공 사물들, 지어지고 허물어지는 수많은 공간들을 보며 현재 유효한 인공의 생태계가 그 기능을 잃고 모두 무로 돌아간 먼 미래를 상상한다. 현재의 유물로 과거를 추적해 나가는 것 처럼, 먼 미래 언젠가에 남겨질 현재에 대한 흔적들은 새로운 과거를 만들 것이다. 채집된 조각들은 헤테로토피아적 시공간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뒤엉킨 흔적으로 복원된다. 원형의 인공(人工) 사물 생태계: 존재론적 좌표를 그려가는 횡단적 사유의 과정 _이현경(신한갤러리 큐레이터) 박예나는 인간/비인간, 물질/비물질, 실재/허구 등의 경계를 넘나드는 횡단적 사유를 기반으로 두 관계의 관습적 사고에 대한 질문을 던지며 인공(人工) 사물 생태계를 창조해 간다. 오늘날 필요에 의해 용도가 명확한 인공의 기성품을 창작의 재료로 활용하여 작업을 하는 작가들은 많지만, 그와 다르게 박예나에게 주목할 점은 인공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정해진 용도로만 사용되는 인공 사물이 오히려 인간의 행동과 사고를 제한한다고 생각한 박예나는 작업 초기부터 현재까지 인공 생태계 속 인공 대상(사물)을 기존 평면적 시각에서 벗어나 주체성을 가지고 존재론적 좌표를 찾아가는 새로운 존재로 재창조한다. 작업 초기 하나의 완결되지 않은 구조로 치환되지 않는 생명력을 가진 <무엇이 되지 않기 위한 형태>(2018), 《이탈을 위한 움직임》(2017) 등에서 보인 작업 속 사물들은 본래의 형태나 쓰임새에서 벗어나 새롭게 정체성을 부여받아 다른 대상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박예나는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벗어나 기존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에 대한 고정적이고 이분법적 사고의 경계를 허물고 관계를 재정립한다. 이런 관점이 동시대 작가와 비교하여 아주 특별한 지점은 아닐 수 있겠으나 그의 작업은 현대의 비물질적 인공 환경인 온라인 가상 세계로까지 매체를 넓혀 디지털 네트워크상 더욱 확장된 세계관을 보여주며 이전 작업이 다음 작업의 레퍼런스 또는 재료가 되고, 하나의 전시로 완결되지 않은 미완의 생태계로 직조된다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가령, 전시에 사용되었던 사물들이 다음 전시에 마치 유물과도 같은 모습으로 발굴 혹은 복원된다거나, 수많은 기존 인공 사물들이 뒤엉켜 익숙한 듯 생소한 또 하나의 생명체를 만들어내거나, 이러한 사물의 생태계가 온라인으로 넘어가 무한 증식하는 복수(複數)적 사고방식을 기반으로 자신을 둘러싼 시공간에서 사물들을 수행적으로 수집, 그렇게 집적된 사물들은 인간, 사물 사이 생태계 속 무수한 시간성을 담는 동시에 새로운 중심을 만들며 서로 얽혀 작가만의 독특한 인공 생태계를 형성한다. 이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프루스트와 기호들(Proust et les Signes)』에서 ‘횡단선’이라는 용어와 연동된다. “횡단선들은 결코 다자(多者, le multiple)를 일자(一者, l’Un)로 환원시키지 않고, 다자를 하나의 전체로 그러모으지 않는다.” 박예나의 사물들은 위계적인 수직성을 허물고, 경계의 내, 외부에 자유롭게 존재하며 끊임없이 사물을 재형상화한다. 이런 재형상화의 근본적인 토대에는 인간의 신체와 작업의 연결성과 관련된 작가의 사유가 담긴다. “몸들을 가로질러 사유하다 보면 비활성적이고 텅 빈 공간이나 인간이 사용할 자원으로만 여겨지는 환경이, 사실은 그들 자신의 필요, 요구, 행위를 지닌 살된 존재(flesh beings)의 세계임을 인식하게 된다.” 스테이시 엘러이모(Stacy Alaimo)의 말처럼 박예나는 횡단-신체적 사유를 가지고 물질들은 인간의 경계를 재형상화하여 인간 신체가 마치 작가의 작업 혹은 데이터의 양분을 공급하는 도구처럼 확장된다. 그렇게 인공 사물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사물임에도 불구하고 박예나의 작업 안에서 역설적으로 인간을 이용해 다른 사물에게 살을 주며, 몸을 가로지르는 운동성을 가지고 예측 불가능한 작용을 만들어낸다. 가상과 현실을 횡단하며 인간의 신체를 경유한 인공 사물의 존재론적 사유는 작가의 작품 제목이나 이전의 인터뷰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프로젝트 <포스트-퓨쳐 그라운드>(2019-2021)에서 도시의 파편을 ‘지구의 인공 각질’로 묘사, <몸들의 죽음>(2021) 등 직접적인 신체적 표현을 사용하는가 하면, 터널이나 내장을 상상하게 만드는 <발굴>(2023), 우주나 세포 등 거대한 생명체의 구조를 연상시키는 <사랑의 발견>(2024), 사람의 피부와 유사한 실리콘 물질로 제작된 사물들을 마치 생물의 표본같이 유리병 속에 넣은 <사물 복원>(2024) 등은 죽음 이후 우리의 몸이 다른 생명체의 양분이 되는 것처럼 박예나의 작품 속 사물 역시 또 다른 사물의 생명력의 원천이자 양식으로 전복된다. 또한 박예나의 작업은 기술의 도입과 접목, 현실과 허구의 유동성 탐구, 거기에 작가의 SF적 상상을 더해 단순히 ‘사실(fact)’과 분리된 ‘허구(fiction)’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가상의 시나리오와 실재 인공 생태계를 기반으로 어떠한 작용이 일어난다는 ‘운동성’에 초점을 맞추어 ‘사실성'을 지니면서도 ‘허구성'을 지닌 또 다른 페르소나를 지닌 혼성체를 만들며 확장된 세계관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2019년 ‘물질 이후의 형태가 디지털 세상에서 가능하다면?’이란 상상을 모티브로 도시의 파편들을 스캔하여 처음으로 가상공간을 만들었던 프로젝트 <포스트-퓨쳐 그라운드>, 2022년에는 문명 이후의 가상의 세계관 ’아티얼리즘(artialism)‘과 온라인 생태계 내, 인공 사물들의 데이터에서 탄생해 인간 활동을 주축으로 생존하고 번식하는 생명력을 가진 새로운 종(species) ‘아티젝타(Artijecta: Artificial + Object + Data)’를 통해 미지의 인공 환경을 구축한다. 인공 사물들의 데이터가 무한 증식, 각종 사물들을 연결하고 물질세계까지 영향을 미치며 이전과 다른 생태계를 형성한 그의 작업에서 사물들은 끊임없이 시공간을 횡단하고 재구성되며 스스로의 질서를 확립, 정체성을 갖게 된다. 가령, 익명의 연구자들의 임시 연구 기지처럼 연출된 을지로 개인전 《핫스팟 베이스 캠프》(2023)에서 서울시 공공 와이파이 오픈 API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된 <핫스팟 탐사 앱>(2023)은 사용자의 GPS 정보를 가져와 현장 탐사 시 ‘아티젝타’의 서식지로 안내하며, 공공 와이파이망 속 탄생한 '아티젝타'는 세포 덩어리와 같은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미지의 데이터 생명체에 대한 진실에 다가가게 유도한다. 이는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작되었으나 가상의 데이터 생명체에 가 닿기 위한 인공 사물들의 이야기를 담으며 전시 공간에 진실이라고 믿게끔 설정된 단서들은 진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 그러나 작가는 단순히 사실과 허구가 뒤섞인 현실을 보여주려는 것은 아니다. '픽션'으로 잠재된 실재는 오히려 그 존재가 부각된다. 허구는 실재성을 가지며 독립적인 생명체로 진화하고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에게 관통되고 침투돼 관계를 맺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새로운 실재를 마주할 가능성을 얻는다. 최근 OCI 개인전 《Interstitium》(2024) 역시 이러한 작가의 작업관을 담았다. 여기서 '아티젝타'는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융합체가 되어 현실 세계까지 잠식하는데 전시는 작가가 작업을 통해 담고 싶어 하는 아티얼리즘 세계관의 일부로 물리 세계와 가상 세계가 붕괴되고 두 세계가 융합된다는 허구적 배경을 기반으로 한다. 전시 제목은 인간 신체에서 발견하지 못한 장기 구조로 없다고 여겨졌던 ‘사이 공간’으로 칭해진 ‘Interstitium’이라는 뜻으로 기술 발전으로 발견된 새로운 사실과 그로 인해 드러나는 인간의 한계를 은유한다. 새로운 것이 밝혀져 진실이 거짓이 되는 역설적인 상황은 우리가 믿고 있었던 진실이 얼마나 허상적이고 가벼운 것일 수 있음을 지각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작가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모호해진 세계 속, 하나의 현실로 환원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허구를 실재하는 우리 삶의 영역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한 마르쿠스 가브리엘(Markus Gabriel)처럼, 허구를 실재에서 분리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의 불투명성을 인식하고 오히려 진실을 판단하는 것을 유보하며 잠재된 실재성을 긍정, 좀 더 유연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넌지시 제안한다. 현대 사회에서 인공 지능 기술이 갈수록 발전함에 따라 AI가 수많은 종류의 신경망 아키텍처를 생성, 우리에게 디스토피아적 인공 지능 불안(AI Anxiety)을 야기한다. 동시에 비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와 함께 인간을 세상의 중심이 아닌 하나의 종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박예나의 최근 개인전 《헤테로토피아 : 복원된 미래》(2024) 역시 이러한 위계적 질서를 깨뜨리는 비인간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생성과 소멸의 메커니즘 아래 “헤테로토피아적 시공간 속에서 과거, 현재, 미래가 뒤엉킨 흔적으로 복원”된 흔적들을 유물과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하며 모든 기능을 잃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무(無)의 상태로 돌아간 인공 생태계 끝에서 회고하듯 사물들의 복원을 통해 마주할 수 있는 실재를 작가의 SF적 상상력을 더해 보여준다. 이 순간에도 현재는 과거가 되고 도래하는 현재는 미래의 단편을 담는다. 존재론적 흔적들을 남기는 과정에서 보여지는 박예나의 인공 생태계는 역설적으로 미래에 다른 무언가로 변모될 수 있는 순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박예나는 인간과 비인간, 현실과 허구가 얽혀 만들어진 인공 사물 생태계의 복합적인 관계를 가상과 실재 공간에 구현하며, 인간 중심적으로 생각했던 사고의 지형도를 재배치하고 존재론적 좌표를 그려가는 횡단적 사유의 과정 아래 존재와 세계에 대한 다층적 시각을 우리에게 제안한다. 사물 복원I, 실리콘, 분쇄된 인공파편 및 케이블, 수집장, 2417 * 912(mm), 2024 사물 복원 II, 실리콘, 분쇄된 인공파편 및 케이블, 다양한 크기의 유리병, 가변설치, 2024 사물 복원 III, 실리콘, 분쇄된 인공파편 및 케이블, 라이트 박스, 가변설치,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