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시 명 : COLLECTION 배하경 개인전기 간 : 2023년 9월 1일 부터 10월 14일 까지운영시간 : 오전 10:00 부터 오후 8:00 까지장 소 : 잔느 (충북 청주시 서원구 사직대로 298-1)지 원 : 충청북도, 충북문화재단 서로가 서로에게: 《컬렉션》展에 관한 네 가지 해석 첫 번째 해석: 《컬렉션》은 건축 요소들, 또는 상품들을 미술관-갤러리에 끌어들인 전시다. 배하경은 공구상가나 자재상점에서 접할 수 있는 인테리어 자재 견본들을 미술관-갤러리에 전시했다. 이 전시에서 우리는 인테리어 공사에 사용하는 석고텍스, 타공텍스, 테라조, 테라코타, 금속, 석재, 나무 등 벽재, 바닥재, 천장재 견본들을 만난다. 그런 의미에서 《컬렉션》은 선택한(발견된) 사물을 예술의 위치에 놓은 뒤샹의 레디메이드를 연상시킨다. 뒤샹의 <샘>(1917)과 마찬가지로 《컬렉션》은 사물을 그 용도에 맞게 배치하는 일상의 규범을 위반한다. 자재 견본들은 자재상가에 있을 때 비로소 제 기능(사용가치)을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배하경은 그것들을 미술관-갤러리에 끌어들여 그 본래의 용도, 기능을 무효화했다. 《컬렉션》에서 우리가 만나는 자재 견본들은 배하경에 따르면 “실용적 기능이 사라진 사물들”이다. 그것은 도구적 사물-상품이지만 미술관-갤러리에 전시되어 있기에 예술작품처럼 여겨진다. 따라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이것은 왜, 어떻게 예술작품인가?” “누가 또는 무엇이 그것들을 예술작품으로 만들었나?” 두 번째 해석: 그런데 위의 첫 번째 해석은 문제가 있다. 몇 가지 수정이 필요하다. 먼저 《컬렉션》에서 지금 전시 중인 것은 사실 벽재, 바닥재, 천장재 등 건축 자재의 견본들이 아니다. 그것은 도구적 사물-상품이 아니고 말 그대로 예술작품이다. 그것은 배하경이 직접 그린 회화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크릴 물감으로 각종 건축 자재의 표면을 매우 사실적으로 화폭에 재현했다. 에어브러쉬까지 사용해 자재표면의 패턴이나 질감, 광택(아른거림)을 꽤 공들여 묘사했기 때문에 처음 볼 때는 정말 자재처럼 보인다. 회화 지지대로 화가들이 잘 쓰지 않는 포맥스나 공예용 목재를 사용했는데, 이 역시 회화를 자재처럼 보이게 만드는 데 일조한다. 다른 하나는 《컬렉션》이 열리는 공간에 관한 것이다. 이 공간을 미술관-갤러리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배하경이 택한 전시공간-잔느(ZANNE)는 소형 갤러리이자 판매, 교육, 워크샵, 친목도모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복합문화공간이다. 상가에 속해 있어서 처음 볼 때는 무언가를 판매하는 상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게다가 배하경은 이 공간을 자재상가의 상점처럼 꾸몄다. 작품들은 마치 상가 진열대의 상품들처럼 진열되어 있다. 작가는 공간 한쪽에 작품들을 마치 상품처럼 겹겹으로 기대놓기까지 했다. 이러한 배치를 배하경은 “개별 작품들을 일종의 쇼룸 디스플레이 전략을 통해 모아 보이는 작업”으로 설명한다. 위의 두 가지 사실에 비추어 보면 첫 번째 해석과는 전혀 다른(어쩌면 정반대) 해석이 가능하다. 즉 《컬렉션》은 사물-상품-레디메이드를 미술관-갤러리 문맥 속에 끌어들인 전시라기보다는 예술작품-미술관-갤러리를 최대한 사물-상품-상점에 가깝게 보이도록 연출한 전시이다. 《컬렉션》은 ‘예술 아닌 것’을 ‘예술’로 보이게 만드는 전시가 아니라 ‘예술’을 ‘예술 아닌 것’으로 보이게 만드는 전시에 가깝다. 세 번째 해석: 그런데 위의 두 번째 해석은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다. 앞서 나는 첫 번째 해석을 부정했지만 이 첫 번째 해석은 전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다. 도구적 사물-상품에 해당하는 건축 자재를 예술의 문맥-전시에 끌어들인 것만큼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실을 고려하면 첫 번째 해석과 두 번째 해석을 모두 아우르는 또 다른 해석을 시도해 볼 수 있다. 이 경우 우리는 《컬렉션》에서 작동 중인 두 가지 힘, 곧 ‘사물-상품을 예술로 이끄는 힘’ 과 ‘예술을 사물-상품으로 이끄는 힘’ 모두에 주목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힘 가운데 무엇이 우세한지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즉 《컬렉션》에서 우리는 확고한 결정을 내릴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사물-상품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하게 되고 예술작품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부정하게 된다. 배하경에 따르면 그것은 “그것 아닌 것” 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컬렉션》은 가진 적도 없고, 가질 수도 없는 것을 잃어버린 것으로 여기게 만드는 특이한 전시다. 그런데 그 잃어버렸다는 느낌은 묘하게 그것과 함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여기서는 ‘없음’이 ‘있음’을, ‘있음’이 ‘없음’을 지탱한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게다. 네 번째 해석: 앞에서 나는 “지탱한다”’고 썼는데 실제로 《컬렉션》에서 하나는 다른 하나를 지탱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고 있다”고 말하면 어떨까? 여기서는 그 어떤 것도 홀로 굳건히 서 있지 않다. 받치고 있는 것들, 또는 기대어 있는 것들이 우리의 눈길을 끈다. 배하경은 이렇게 말한다. “작업을 보여주는 방식에 대해 고민한다. 어떤 물체든 단독으로 있는 것보다 어떤 장치들이 더해졌을 때 힘을 얻는다”홍지석(미술비평, 단국대 교수)